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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우리네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봅니다.
두 발을 뿌리내리고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북한 동포들, 이땅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선열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두고두고 함께 가꾸고자 다짐합니다.

95기 하나원 남한역사기행을 다녀와서 ( 한숙/서울 )
좋은벗들 2007.03.30 3169



1박2일이라고 하나원 역사기행 참가를 늘 미뤄왔다.
하루 여정으로 바뀐 다음도 미뤘다. 표면적으로는 남편의 출근과 아이들 등교가 이유였지만 실은 새터민과 부딪힐 자신이 없었다.
그들과 만나서 뭘 어찌해야 할 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한 번 간다고 했다가 펑크까지 낸 다음이라 , 수요일의 밤 법회 참가로 몸이 무지 피곤한데도 스스로에게 약속을 지키는 심정으로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밥 챙기고 , 나는 시간이 없어 굶고 나갔다.

하나원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송수신기 점검부터 일 나누기까지 진행된다.
모든게 몸에 익지 않고 어색한데다가 계속 하품이 난다.

하나원에 도착해서 나와 다른 단체 한 분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기다린다. 다수의 사람이 출입하는 것을 하나원측에서 꺼리는 모양이다.

이미 관광버스에는 동포들이 다 타고 있다.
원생 2명이 안 와서 병원 갔냐 어쩌냐 하면서 원생 총무와 선생님이라 불리는 하나원의 통일부 직원 사이에 불편한 말들이 오간다.
차에 탄 사람들 중 몇몇에게서 웅성 웅성 말이 난다.
뭔가 불편한 상황을 못 견뎌한다는 첫 인상이다.

그리고 차가 출발하는데 , 고속도로로 들어서기 전에 여기저기서 멀미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참 안스러웠다. 그간 이렇게 꽉 막힌 차에 갇혀 실려 다닐 일이 없어서기도 했겠지만 , 몸이 많이 약해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신산했을 그들의 탈북 과정이 연상되었다.

수신기 배부와 멀미 처리를 능숙하게 하는 배명자 보살님을 보면서 참 그 분이 크게 보였다.

독립 기념관에 도착하고 스텝들 소개가 있고 , 바로 전시물들에 대한 설명이다. 이승용 부장의 설명은 그 깊이와 넓이가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지난 학창시절의 역사 교과를 배운 기억들이 떠오르고 , 부지런히 따라 적는 새터민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입체 전시가 신기한지 전시물에서 사진 찍고 싶어 하는 데 못 들어주어서 미안했다.
1시간 정도 차를 탔건만 벌써 힘든지 의자에 앉아 있는 이들도 있고 , 대부분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전시물들을 개별적으로 관람한다.

입소 후 처음 나들이라서인지 일견 설레고 흥분한 모습들도 보이고 , 역사에 깊은 흥미를 갖는 모습이 신기했다.
북쪽 동포들은 우리보다는 역사에 대한 강한 관심을 가진듯 해 보였다.
손바닥에 설명을 적고 , 볼펜을 요청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쉬지 않고 이어지는 설명을 다 들으면 참 좋으련만 여기 저기 흩어져 쭉 따라가는 이는 7-8명을 넘지 않는다.
다른 기수보다는 집중도가 높은 편이라고 자주 오는 분이 얘기한다.

실제 인물을 흉내 낸 모형이나 터치 스크린 같이 누구나 흥미를 가질만한 전시물 앞에서 동포들도 발길이 멈추는데 , 계속 설명을 따라서 움직여야 했다.
그들에게 충분히 시간을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리고 도중에 역사기행의 기록 사진을 남기려고 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다. 그 기세가 무서울 정도다. 총괄 진행자의 제지로 겨우 멈춘다.

7관까지 보기로 했지만 결국 5관에서 멈추고 점심밥을 먹으러 간다.
그리고 바로 차에 탑승 , 멀미를 또 얼마나 해달까?
걱정이 앞섰는데 , 다들 식곤증인지 자느라 오히려 아침보다 멀미가 적다.
나도 그냥 자버렸다.

수원 화성,
나들이 기분이 절로 난다. 동포들도 그런 것 같았다. 원생들에게 다 지급된 점퍼를 벗고 평상복 차림이다. 우리네 모습과 하나도 틀리지 않다.

설명은 세세하고 명쾌해서 과거 역사 교과서 내용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동포들도 밝아지고 아침보다 유연해진 것 같았다.
몇 분과 몇 마디 나누기도 했다. 참 정이 많고 적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동포들 중 누군가와 접촉하려는 사람으로 해서 통일부 직원과 형사 한 분이 긴장했던 것 같다. 동포들을 등치는 브로커일 수 있으므로.

사진을 그리 찍어주길 원하면서도 간간히 이 사진이 유출되지 않는지 점검하는 이들도 있다. 북에 남은 가족의 안위를 염려해서리라.

부부가 온 이들 중 몇몇 여자 분은 남편들을 위한 술을 암암리에 요구하기도 했나보다.
그러나 술은 동포들의 일탈을 부추킬 수 있어 절대 금지인 모양이다.

이제 몸 풀리고 동포들과 낯이라도 익힐 것 같다 했는데 , 벌써 일정이 끝난다.

상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동포들의 한국 입국 과정이나 정착 과정서 겪는 남모르는 어려움들을 많이 얘기했다.
그들이 편하게 살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우리와 다르지 않지만 또 많이 다른 그 경계를 허물 마음의 준비를 우리 모두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힘들었을 그들의 삶을 우리가 껴안아야 한다는 ......

이제 동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하는 두려움은 가셨다.
올 수 있으면 자주 역사 기행에 참가해서 동포들과 우리가 하나임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도 깊이 새기고 , 또 동포들과 먼저 익숙해져야겠다.
그것이 바로 통일로 가는 과정일 것이므로.
과정을 잘 거쳐야 부작용이 적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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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기 하나원 역사기행2
하나원 역사기행을 함께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