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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이웃인 남과북이 먼저 평화로워야 합니다
평범한 시민들이 남과 북의 아픔과 경험을 나누며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어 갈때, 그 과정이 바로 참 통일입니다. 남북한동포 ‘좋은이웃되기’는 좋은벗들에서 추진하는 북한동포 생활정착 지원사업이자, 남북한동포가 함께 일구는 생활 속 통일운동입니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로운 통일을 염원하는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새터민 인터뷰>돈보다 마음입니다.
분당 좋은벗들 이정민 2015.05.22 2314


북한 이탈주민들이 한국에 오는 것은 반드시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만큼 새터민들을 부디 마음으로 보아주기를 간절히 요청하는 목소리가 있다. 또 누군가는 마음으로 대해준 이들에 대한 지극한 감사를 표해왔다.    

     

     

말보다 마음으로 이해해 주세요 ... 김정화

     

  김정화(가명)씨는 1999년 고난의 행군 막바지에 고향을 떠났다. 길거리에서 죽어있는 사람을 보는 일이 흔했고, 버스터미널에 갓난 아기가 버려진 것을 어렵지 않게 보던 무렵이었다. 견디고 견디어 보았지만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딸 둘을 데리고 중국으로 넘어가는 게 유일한 살 길이라 생각했다.

  중국에서 10년을 살면서 늦둥이로 셋째 딸을 낳았다. 먹고 사는 문제는 그럭저럭 해결이 되었지만 신분보장이 안 된다는 게 고통스러웠다. 경찰차나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이들을 떳떳하게 키우고 싶었다. 한국에 가면 국적과 신분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아이 셋을 데리고 떠날 용기를 낼 만큼 유혹적인 얘기였다.  

  자식을 당당히 잘 키우고 싶었던 욕구가 컸던 만큼 이곳에서도 가장 큰 관심은 아이들이 잘 적응하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가? 였다. 자녀가 있는 새터민들이 대부분 아이들을 기숙학교에 맡기고 일을 찾아 나서지만, 그녀는 적게 벌고 빡빡하게 살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있는 쪽을 택했다. 막내를 제외한 큰 애 둘이 통학시간만 하루 두 시간 넘게 걸리는 학교에 다녔다.

  그래도 낯설고 외로운 정착 초기의 그 시간 동안 가족이 함께 있었다는 게 그녀에게는 큰 자랑이고 위안이 되었다. 힘들여 한국에 오고도 가족이 깨지는 경우를 그녀는 주변에서 종종 보았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나는 엄마다.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는 아플 자격도 없고 흔들릴 자격도 없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렇게 중심이 단단히 잡혀있던 덕으로 작년에는 둘째까지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그 시간이 녹록했을 리 없다. 아이들은 아직도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너 교포니?” 한국말 발음과 억양이 다른 것을 두고, 다 큰 딸들이 지금도 같은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는 차라리 그냥 교포라고 해둔다. 중국에 오래 살다 와서 그렇다고 말해 버린다. 탈북자라고 하면 그때부터 편견에 찬 시선과 질문이 쏟아진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몹시 부정적이고 남북관계가 경색될 수록 북한에 대한 반감은 점점 커지는데 탈북자를 보는 시선도 거기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어려운 일을 겪는 건 딸들만이 아니다. 그녀도 일자리를 구하거나 일을 하는 과정에서 오해를 많이 받았다.

  하나원 퇴소 후 처음으로 직장을 구할 때였다. 옷 만드는 작은 공장에 다니게 되었는데 사장이 당신을 채용하면 내가 간첩으로 몰리는 것 아니냐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녀의 일솜씨를 보고 만족해하면서도 퇴근 때만 되면 간첩 운운하였고 나중에는 그녀가 한 일을 두고도 일일이 트집을 잡았다. 결국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그 곳을 나오고 말았다. 얼마 전에는 일터에서 도둑으로 몰린 일도 있었다. 선물용 컵 세 개가 없어졌는데 그녀를 도둑으로 몰더란다. ‘거지나라에서 왔으니 너도 거지근성이지 않겠느냐. 네가 가져간 게 틀림없다는 게 그들의 말이었다. 분하고 억울해서 며칠을 잠도 이루지 못했다.

  같은 민족인데 조선민족이 자존심 강하고 빚지는 거 싫어하는 걸 왜 모릅니까.” 그녀는 목소리를 높였다. “먹지 못해서 한국까지 온 게 아닙니다. 먹는 문제는 중국에서 벌써 다 해결이 됐습니다. 당당하게 내 신분으로 살고 싶어서 한국에 온 건데 같은 국민이고 시민이라는 걸 마음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점이 너무 힘듭니다.”

  그녀는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이 고맙지 않겠습니까. 한국도 중국처럼 한발 한발 들어가 잇속을 챙기는 게 낫지 않습니까. 북한의 마을 근처 산들이 화전 때문에 다 민둥산이 됐다지만 아직도 마을과 멀리 떨어진 곳은 울울창창한 숲입니다. 곳의 벌채권을 중국이 다 따서 들어가 있습니다. 말로만 통일대박이라 하지 말고 많이 가진 사람이 먼저 북한과 북한 사람을 마음으로 이해한다면 미래가 밝지 않겠습니까. 가정에서부터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통일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녀는 지난 좋은벗들에서 마련한 만다라 마그마힐링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의 고통이 많이 해소되었다고 했다. 돌을 눌러 놓았던 것처럼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단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꼭 필요한 것도 경제적 지원보다 바로 그런 마음의 치유라며 감사와 함께 마지막 당부를 잊지 않았다. “부디 먼저 마음으로 보아주세요.”

     

     

좋은벗들, 마음을 크게 쓰더군요 ... 최금숙

     

  최금숙(가명)씨는 한국에 온지 이제 만 1년 반이 되었다. 아직 어리숙하고 헤매는 것이 많 시기지만 그녀의 표정은 더 없이 밝고 안정돼 있었다.

  하나원에 있을 때 아들이 팔을 다쳤어요. 거기서 받은 치료가 불완전했는지 사회에 나오고 며칠 후 넘어졌는데 팔이 완전히 부러진 거에요. 천지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벌어놓은 돈도 하나 없는데 얼마나 막막했는지 몰라요.” 밥상을 전달하며 좋은벗들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던 단체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염치없는 짓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의 옷소매라도 붙잡을 판이었다.

  좋은벗들에서는 그런 일이라면 도와주겠다고 선뜻 이야기하였다. 수술을 할 수 있는 적당한 병원을 물색하여 소개해 주고 입퇴원 수속도 내 식구처럼 알아서 진행해 주었다. 그 후에도 자주 와서 어려운 일은 없는지, 모르는 건 없는지 일일이 챙겨주니 기대하지도 않은 친정 식구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푸근해지고 한국사회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내친 김에 한 가지를 더 부탁해 보았다. 작은 아이가 이빨이 다 썩었는데 치료를 제 못 받아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있으니 도와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알아보겠다고 말은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닌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좋은벗들은 여기저기 전화하여 지원을 얻고 연결하고 병원을 알아보고 치료에 동행까지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새터민 자녀들이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주었다.

  금숙씨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큰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남의 것 가질 줄만 알았지 베풀 줄을 몰랐는데 여기 와서 베푼다는 게 뭔지 알았다고 했다. “좋은 벗들은 모든 걸 다 떠나서 그 사람의 어려움을 보고 도와주더군요. 정말 마음을 크게 쓴다는 걸 느꼈습니다.”    얼른 정착을 잘 하고 일어나서 도와주신 분들께 보답하고 싶다고 그녀는 말한다. 북에서라면 집에서 대접받으려 할 나이 분들이 방문 오실 때면 저런 할머니가 남을 돕겠다고 나서다니 너무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고 같이 잘 살자는 마음이 느껴진단다. 따뜻한 눈빛, 힘이 되는 고마운 말씀을 많이 들으니 지나온 과거가 어떠했든지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저 나도 빨리 일어서서 나보다 힘든 이웃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엄마가 밝아서인지 아이들도 적응을 잘 하고 있었다. 팔을 다쳤던 아들은 유소년 축구팀에 소속돼 지방까지 원정 경기를 다녀왔단다. 친구도 많고 학교생활이 재미있다는 아들은 엄마를 닮은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저렇게 순하고 밝은 얼굴이라면 이 가족의 안녕을 확신해도 좋을 듯하다.

     

* () 좋은벗들은 윤선주 작가의 후원으로 한부모가정이나 어려운 처지에 처한 새터민들에게

    치과 진료 지원을 한시적으로 진행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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