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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향한 투쟁의 현장, 항일독립운동유적지
먼 이국 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돌아봅니다.


항일전투 3 - 청산리 전투 이후의 변화
좋은벗들 2006.09.20 4179


청산리 전투이후의 변화

독립군의 북정
대한군정서군은 1920년 10월 22∼23일 어랑촌 격전을 승리로 이끈 뒤 일본군과 가능한 한 접전을 피하며 지체하지 않고 밀산을 향하여 북정을 개시하였다.
한편 중국측과 근거지 이동에 관해 타협이 이루어져 독립군이 장정을 시작할 때, 서남쪽의 백두산록을 향하던 김좌진과 홍범도의 연합부대와는 달리 처음부터 북쪽의 라자구와 밀산으로 장정한 최진동의 군무도독부군과 대한의군부 및 대한신민단·훈춘한민회 등의 독립군 일부 부대 약 1,000여 명은 라자구에 집결하여 이범윤을 명의상 총재로 추대하고 최진동을 사령관으로 하는 대한총군부(大韓總軍府)를 조직하고 연해부 방면에서 기병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일본군과 항전할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그 후 다른 독립군이 밀산 방면으로 북정함에 따라 대한총군부도 그 곳으로 향하였다.
독립군의 북정 집결지가 된 밀산은 1910년 전후부터 민족운동자들이 국외 독립운동기지의 하나로 사용한 곳이었지만 많은 독립군을 장기간 수용할 수는 없는 곳이었다. 연해주는 간도 못지않게 1910년 전후부터 국외 항일운동의 중추기지로 터전을 닦아 오던 곳이었고, 적어도 2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한인사회가 형성되어 있던 곳이었다. 더우기 당시는 볼세비키혁명이 시작된 직후로, 물론 혁명 목표달성을 위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볼세비키들이 피압박 약소민족의 해방을 후원하겠다고 크게 선전하던 때였다. 그리하여 여러 독립군단의 대표들은 회의를 열어 장기 항전을 다짐하고 이를 준비하기 위해 러시아 연해주로 월경 할 것을 결정한 뒤 당당하게 하나의 독립군단으로 진군키 위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였다. 대한독립군단 조직에 합류한 중요 군단을 보면 서일을 총재로 한 대한군정서를 비롯하여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구춘생이 회장인 대한국민회의 국민군, 이명순이 지도하는 훈춘한민회, 김성배가 지도하는 대한신민회, 최진동이 지휘하는 군무도독부, 이범윤을 총재로 한 대한의군부, 김국초가 지도하는 혈성단, 김중권이 지도하는 대한정의군정사 등이었다. 그리하여 대한독립군단은 1921년 1월 초 일제의 연해주 침략군인 포호군의 경계망을 뚫고 러시아로 진군하여 자유시(알렉시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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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전투 2 - 청산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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