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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향한 투쟁의 현장, 항일독립운동유적지
먼 이국 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돌아봅니다.


연변지대의 항일유적지 4 - 용정중학교
좋은벗들 2006.09.20 4655


용정 중학교
1921년에 천도교 계통의 동흥중학교와 유교 계통의 대성중학교가 설립되었다. 당시 이 두 학교는 300여 명의 학생이 재학하였으며 교사와 학생들은 항일 민족 해방 교육을 받았다. 일제는 이 두 학교를 탄압하기 시작하였고 1927년 10월 용정 주재 일본 총영사관은 영사 경찰을 동원하여 이 두 학교의 교사들을 체포하자, 학생들은 영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들 학교에서는 「애국가」「권학가」「학도가」등 가곡과 조선 역사·조선 지리를 열심히 가르쳤다. 일제는 자기들이 펴낸 일본어 등 교과목을 강요하였으나 학교에서는 이를 가르치는 척 하면서 비밀리에 <최신동국사략 最新東國史略><월남망국사><이순신전><안중근전><국어국본> 등의 교과를 가르쳤다.
일제는 마침내 1934년 초 두 학교를 합쳐 민성중학교를 만들었으나 강한 반대에 부딪쳐 1년만에 종전대로 분리시켰다. 그 후 일제는 다른 방법을 동원하여 대성중학교 교사 현관의 지붕 모양이 고려 시대 건축물의 특색을 띠었다고 하여 방학중에 허물어 버리고, 일본인에 의한 일본어 교사를 채용하여 감시를 강화하였다. 그러나 일본어 시간에 학생들이 벙어리 시늉을 하는 등으로 저항하자 학교의 동쪽 교문밖에 작은 벽돌집을 짓고 일본 총영사관이 분주소(分駐所)를 앉혔다. 그러자 교원과 학생들은 교문을 남쪽으로 옮겼다.
1939년 일제는 위만주국의 교육령에 의거하여 두 학교를 '용정국민고등학교'로 개편 병합하고 교장에는 형식적으로 조선인을 앉히고, 일체의 권한을 행사하는 부교장에는 일본인을 앉혔으며 일본인 교사들을 배치했다. 합병된 후 학생들은 "밀정을 잡아내자'는 구호를 외치며 7일간 동맹 휴학을 했으며, 학생들은 조선인 밀정교사를 잡아 밀정을 않겠다는 서약을 받기도 했다. 1941년에 일제가 다시 이 학교를 '용정 제2국민고등학교'로 개편하자 학생들은 물리적으로 대결하려 했고 교사들은 사표를 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오늘날 용정중학교가 대성중학교 자리에서 그 전통을 이어 가고 있으며, 무수한 인재를 배출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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