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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었던 발해
잊혀진 역사, 그러나 혼과 생명이 살아있는 발해를 찾아갑니다.


발해문화의 총체적인 특징
좋은벗들 2007.01.30 6970


 

발해문화의 총체적인 특징


발해문화의 총체적인 특징을 말한다면, 발해는 ‘원유의 기초위에서 선진적인 과학기술과 생산기술을 받아들여서 자기 실제정황에 맞게 결합시켜 독창적인 자기문화를 창출했다.’ 라고 할 수 있다. ‘원유의 기초위에서’ 이 말은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하고 또 말갈의 문화도 계승했다는 것이다. 발해인으로는 고구려족도 있고, 말갈족도 있으니 자연히 계승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주로 무엇을 받아들이는가가 중요하다. 이렇게 원시대의 기초 위에서 선진적인 다른 나라의 문화와 생산기술을 받아들여 그대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지역과 민족의 특징에 맞게 개선시켜서 독창적인 것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첫째, 발해 제3대 문왕의 넷째 딸인 정효공주의 무덤을 중경현덕부에서 10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했다. 그 정효공주 무덤 위에는 탑이 있다. 그 탑 아래에 무덤실을 만들고 거기에 정효공주의 시체를 넣고 매장했다. 무덤 위에 탑을 쌓았던 것이다. 그 탑이 7층 내지 9층이다. 이런 것은 고구려 때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당나라때에도 비슷한 형태가 있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똑같은 것이 아니다. 당나라 탑은 벽돌로 쌓은 전탑(塼塔)이다. 탑 아래의 무덤실에는 사람의 죽은 시체를 넣는 것이 아니라, 사리나 불경을 넣거나 그렇지 않으면 유명한 스님의 뼈를 넣었다. 그러나 발해는 그 문화를 받아들인 다음에 그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 무덤 안에다 시체를 넣었다. 이렇게 독특한 것을 창조하였던 것이다. 무엇이든지, 남의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고, 다 자기의 실제 정황에 결합시켜서 독창적인 것으로 창조했다. 이와 같이 발해는 229년 존속하는 기간에 동북아시아에서 잊지 못할 그런 문화들을 창조하였다.

둘째, 돈화에서 강동24개석을 볼 수 있다. 강동24개석이란 것은 다른 나라에는 없다. 고구려 ․ 고조선에도 없고 백제 ․ 부여 ․ 신라에도 없다. 중국 하나라로부터 상, 주, 춘추전국, 진 ․ 한, 양한, 양진남북조, 수, 당, 5대 10조, 송, 원, 명, 청에 이르기까지 몇 천 년의 역사에서 24개석과 같은 그런 것은 없다. 오직 발해에만 이런 것이 있다. 이것이 아주 특이한 것이다. 동방의 피라미드라 일컫는 광개토대왕비석을 고구려에서 만들었듯이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냈다.

세째, 발해는 벼농사를 창조했다. 동북3성의 역사에서 벼농사를 언제부터 시작했느냐하면 그것은 발해부터이다. 발해 이전에는 없었다. 신당서 기록에 의하면 발해시기에 중경현덕부 경내에서 ‘노주의 벼’가 유명했다고 한다. ‘노주’라 하는 것은 오늘의 중경현덕부자리인 서고성, 그 평강벌 일대, 이 벌을 중심으로 벼농사가 있었다. 만주국시대에도 평강벌에서 나는 벼를 상당히 중시하였고, 만주국 황제도 평강에서 난 벼를 가져다가 먹었다. 이 정도로 평강에서는 벼가 잘 된다. 발해시기에 벼 생산을 했다는 것은 동북역사에서 새 기록을 창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예전에 없던 새로운 농작물을 창조한 것이다. 

네째, 정효공주의 비문에 의하면 정효공주는 ‘수 여사지효’라. 비문에 그렇게 새겨져 있다. 다시 말하면 정효공주는 어려서 ‘여사’의 교육을, 가르침을 받았다는 말이다. 여사는 여자 스승, 여교원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말이다. 이 말은 정효공주는 여학생이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발해시기에는 여선생도 있고 여학생도 있었다는 뜻이 된다. 동북 3성의 역사에서 여학생이 있고, 여자교원이 있다고 한 기록은 발해가 처음이다. 이것도 동북역사에서 새 기록을 창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문자 문제가 많이 논의된다. ‘발해는 자국의 문자가 있었을까?’ 라는 부분에서 사람들은 한자만 사용하고 자기문자는 없었다고 말하는데 발해유지에서 나오는 유물을 보면 기와나 벽돌에 문자가 새겨진 것이 많다. 그 문자 가운데서 해석하지 못할, 한자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그런 문자들이 많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겠느냐하는 것이 과제였는데 그 가운데는 한자가 없어서 쓴 것도 있지만, 그러한 문자의 절대다수는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문자들이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은 이것이 발해가 창조한 문자가 아닐까하고 보기도 한다. 중국에 있는 흑룡강성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 있는 리국중 선생은 발해는 자체로 만든 문자가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발해사 연구에서 자료집으로 제일 일찍이, 제일 많이 만든 김육불 선생도 발해 문자가 있을 것이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그 외에 어떤 증명할 수 있는 그런 문자들이나 기록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벽돌과 기와에 관한 문자도 이해할 수 없는 문자, 이를 ‘이수문자’라고 하는데, ‘이수문자’도 해석하기가 어렵다. 발해의 문자에 대한 비밀을 풀어내는 것도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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