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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었던 발해
잊혀진 역사, 그러나 혼과 생명이 살아있는 발해를 찾아갑니다.


발해의 행정구역 (5경 15부 62주)과 주요 교통로
좋은벗들 2007.01.30 6568


 

발해의 행정구역 (5경 15부 62주)과 주요 교통로


    발해는 남쪽으로는 니하와 대동강을 중심으로 하고 그 이북지역으로 계속된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바다에 접해있고, 서쪽으로는 거란과 접했다. 그리고 서남으로는 요하를 넘었다. 북으로는 흑수말갈까지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차지한 나라였다. 광대한 영토를 5경 15부 62주로 나누어 다스렸다. 이 5경은 행정제도에서 말하면 직할시인데, 부 아래로 중 ․ 구 ․ 현으로 나누어졌다.

  발해시기에는 압록부, 장령부, 부여부, 현덕부, 막힐부, 용천부, 철리부, 회원부, 동평부, 솔빈부, 정리부, 안변부, 안원부 등으로 나눴다. 상경용천부에 가서 30년 있다가 또 동경용원부로 옮겼다가 제3대 문왕이 죽은 다음 이듬해에 다시 상경용천부로 왔다.

그래서 상경용천부는 처음에 30년과 그 후에 서울이 된 것을 합치면 대략 162년 정도 된다. 남경 남해부는 지금의 함경남도 북청 일대이다. 신라와의 관계는 니하를 경계로 하고 대동강 이북으로 넣지 않았다. 지역에 대한 견해는 중국과 한국이 같지 않다. 현재의 국경이 이렇게 되어 있었는데, 옛날에는 가운데 강을 두고 한 구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인위적으로 되어 있는 것이고, 그 다음에 두만강 하구로부터 검은 줄을 가지고 간 것은 현재의 러시아와 중국과의 국경선이다. 발해 땅이 한 절반이 지금 중국에 있고, 1/4은 러시아에 있고 1/4은 북한에 있다. 따라서 모두 견해가 다르고 다만 수도를 했던 지역이 중국 땅 길림성과 흑룡강성에 있다. 연해주 쪽에도 발해의 유물이 많이 발견이 되고 있다.

  우리는 고구려 영토는 물론 발해의 영토에 대해서 별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부여는 오랜 시기 고구려시대에도 부여, 발해시대에도 부여라는 지명이 있다. 아직도 장춘 밑에 부여시가 있다. 지금도 부여를 가면 부여 시기의 성벽이 남아 있다. 주요한 교통로로는 주로 ‘영주도’, ‘조공도’ 라고 신당서에 기록되어 있고 일본도, 거란도, 신라도라 하는 외부로 통하는 길도 나타난다.

  영주로 통해서 가는 길이 영주도이고, 배를 통해서 가는 길(조공도)이 있었다. 거란으로 가는 길은 거란도, 일본으로 가는 길은 일본도, 신라로 가는 길은 신라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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