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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었던 발해
잊혀진 역사, 그러나 혼과 생명이 살아있는 발해를 찾아갑니다.


발해의 건국과 전성기 영역
좋은벗들 2007.01.30 5599


 

 

 발해의 건국과 왕조의 변화

발해는 698년에 대조영에 의해서 성립되고 926년에 거란의 침입에 의해서 멸망하였다. 그 존속 기간은 229년이다. 이 기간에 발해가 서울을 옮긴 것은 4차례이며, 첫 번째 수도는 지금의 돈화, 문헌상으로는 구국에 서울을 정하였다. 두 번째 수도는 742년 제3대 문왕 대흠무 시기에 중경현덕부로 옮겼다.

중경현덕부는 오늘의 화룡시 서고성으로 거기에서 14년 동안 있다가 755년 세 번째 수도를 상경으로 이주했다. 상경은 지금의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이다. 그곳을 서울로 정한 후 첫 30년과 후 132년 그러니까 162년 동안 발해의 수도 역할을 한 곳이다. 따라서 발해진은 발해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비교적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발해의 전성기 영역

발해는 229년간 존속되었기 때문에 그 강역도 매우 넓다. 발해족은 고구려족을 통치계급으로 하고 말갈족과 연합하였다. 고구려 전 지역을 거의 다 점하고 말갈지역까지 점했기 때문에 민족 성분 또한 고구려족도 있고 말갈족도 있었다. 그럼 어느 문화를 계승했는가? 이것은 중국에서 보는 것과 한국에서 보는 것, 일본에서 보는 것, 러시아에서 보는 것이 각기 다르다. 제1대와 제2대는 무력으로 영토를 확대했고, 제3대 부터는 정치개혁을 통해서 국력을 강화했고, 제10대에 와서는 강역이 매우 강성했다. 국력이 강성했기 때문에 역사상 해동성국의 나라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그 강역이 어디에까지 미치게 되었는가는 지금 학계에서 매우 많이 논의되고 있는 것인데, 발해의 강역 문제에 대해서 제일 처음 제기한 책은 ≪신당서》이다.

중국에 있는《신당서》에서는 “발해 강역이 박삭구로부터 장녕 이남, 장녕을 경계로 해서 당나라와 연접해 있다”고 말했다. 박삭구라는 곳은 지금의 강동으로, 압록강 하구의 강동 근처로부터 지금의 관전현 환인 이남, 그 다음에 덕회, 그 다음에 부여쪽으로 나가게 된다. 이것이《신당서》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며, 남쪽은 니하(룡흥강)를 경계로 하였다고 적혀져 있다. 이 기제에 의해서 후대의 사람들이 발해의 강역이 대체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믿어왔다.

  지금 길림성 사회과학원 원장을 하시던 왕승례 선생의 책이 한국에서 번역되었는데, 원래는 《발해간사》인데 번역한 분이《발해역사》라고 번역하였다. 서울대에 계시는 송기호 선생이 번역하였으며, 그 저자는 바로《신당서》에서 제기한 그대로 발해의 강역을 잡아놓았다. 그 이후에 일본사람들이 강역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차차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 길림성에 계시는 소녕량, 리점벅 이런 분들은 서쪽으로는 요하를 넘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요하는 두 가지로써 하나는 서요, 하나는 동요이다. 그런데 동요를 넘었냐 서요를 넘었냐는 정확히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도 미숙하기 때문에 어디까지라는 것, 어디를 넘었느냐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왕승례보다는 좀 더 서쪽으로 밀고 나갔다. 그리고 흑룡강성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 계시는 류정춘, 그 분은 요동반도가 다 발해의 땅이다

이렇게 94년 처음으로 제의했으며, 나는 이 견해가

매우 옳다고 동의한다. 그리고 북한에 있는

학자들이 몇 번, “요동반도의 전 지역은 전부

발해의 땅이다.” 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는

고고학적 근거, 문헌적 근거가 다 구비되어 있다.

한편, 대동강 이북으로부터 압록강 사이에

이르기까지는 어디에 붙여야 하는가 이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이것은 논의되고

있으나 아직 확답은 없다. 내가 보는 견해는 지금

원산 근처인 니하 즉, 대동강 이북 요동반도 전부는

발해의 땅이라고 본다.

 

이것이 지금 쟁론 중에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면 북으로는 어디까지 가느냐?

흑룡강, 중국의 흑룡강성에 송화강과 흑룡강이 합류되어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 있는데   그 이남까지라고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야기한다. 이것도 정확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흑룡강 남쪽에 남흑수말갈, 북쪽에 북흑수말갈이 있었는데, 발해는 흑수말갈을 다 통제해서 자기 판도 내에 거둬 넣었다. 그래서 흑수말갈이 남이든 북이든, 흑수말갈이 속했던 전 지역은 발해의 영역으로 다 들어와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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